에스퍼 장관의 첫 선물 ‘68년 전 편지’…“한미 함께한 희생의 상징”

입력 2019.08.10 (11:47) 수정 2019.08.1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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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에스퍼 신임 미국 국방장관이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취임 뒤 첫 방한입니다. 에스퍼 장관은 어제(9일) 서울 국방부 청사를 찾아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한미국방장관회담을 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정세부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유지 여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상황까지 논의한 회담이 끝난 뒤, 조너선 래스 호프먼 미국 국방부 수석대변인 트위터에 짧은 영상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에스퍼 장관이 정경두 장관에게 선물을 건네는 장면입니다.

[링크  : https://twitter.com/ChiefPentSpox/status/1159699001354141697][링크 : https://twitter.com/ChiefPentSpox/status/1159699001354141697]

에스퍼 장관이 건넨 선물은 바로, 1951년 6·25 전쟁 중 한 미군 중위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호프먼 수석대변인은 트위터에 "우리가 함께한 역사와 희생을 기념하며, 에스퍼 국방장관이 정경두 장관에게 1951년 10월 21일 미 육군 중위가 전쟁 중에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선물합니다. 이 편지에는 한미동맹이 공유한 희생이 담겨 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에스퍼 장관은 이 편지를 건네면서 "한국 전우들과 어떻게 공통의 희생을 했는지 담겨있다"면서, "과거에 함께한 헌신과 희생이 지금도,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상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누구일까요? 데이브 이스트번 미 국방부 대변인은 "테네시 주 방위군 해리 맥키니(Harry McKinney) 대령이 한국전쟁 중에 쓴 편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맥키니 대령은 에스퍼 신임 장관과 마찬가지로,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고 한국 육군사관학교 설립 당시 선임고문관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미 국방부는 신임 국방장관과 연결고리가 있으면서, 또 한국과 인연이 깊은 맥키니 대령이 젊은 시절 쓴 편지를 선물로 택한 겁니다.

편지의 내용을 보면 1951년, 한국군과 미군이 강원도 화천군 금성으로 추정되는 지역 인근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일 당시의 참혹함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사방에서 지뢰와 대포, 박격포가 생명을 위협하던 전장에서, 동료도 여럿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수백 명이 죽고 다친 전쟁 속에서 맥키니 당시 중위가 지휘관으로서 느낀 두려움과 책임감이 편지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아래, 편지 첫장의 전문 번역을 함께 싣습니다.


1951년 10월 21일쯤 한국에서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가 늘 쓰는 방식 기억하지? 날짜를 기억할 수가 없네. 이상한 일이 아니야. 2주 동안 우리 연대는 이곳에서 16개월 동안 경험한 것 중 가장 어렵고 잔혹한 전투를 하고 있거든. 지금까지 22명의 장교와 600명의 군인이 숨지거나 부상했어. 그나마 부상자 중 2%만 사망한 건 다 의료팀 덕분이야. 부상자를 의료팀에 데려가거나 의료진이 부상자를 볼 수만 있다면 그는 살 기회가 있어.

장교 한 명은 3일 전 부대로 갔는데 오늘 부상을 입었어. 그는 2차 세계대전에서 4번이나 다쳤어. 이번이 다섯 번째라 상당히 두려움에 떨고 있어. 한 장교는 제18보병대의 소위였고 6개의 퍼플 하트 훈장과 2개의 실버 스타 훈장, 그리고 수훈 십자 훈장을 받았어. 그가 도착했을 때 나는 그의 훌륭한 공적을 고려해 좀 더 안전한 4.2 포대(Mortor Company)에 넣었지. 그는 트럭을 타고 가다가 지뢰를 밟고 또다시 다쳤어.

나는 대포와 박격포의 공격을 받았는데, 대포는 경고였지만 박격포는 그렇지 않았지... 더 끔찍해. 도로에서 지뢰가 제거된 뒤 8번이나 운전해서 지나갔는데 나중에 누군가는 지뢰를 밟았어. 이틀 전, 나는 같은 도로를 지나갔는데 함께 가던 4대의 지프 중 세 명의 경비들을 태우고 가던 선두의 지프가 지뢰를 밟아서 커다란 굉음과 함께 먼지를 일으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어. 그러나어 TNT의 2.5파운드 중 일부만 터져서 누구도 다치지 않았어. 이건 우리가 발견한 것 중 유일한 불발탄이었지.

도랑이나 참호에 몸을 숨기고 있는 동안 주변으로 20~30여 발의 대포와 박격포가 터질 때의 느낌은 결코 상상할 수 없을 거야. 그러나 익숙해지고 나면 더는 신경 쓰이지 않아. 매 순간 나와 함께 하는 것은 이 산을 올라야 한다는 끔찍한 두려움이야. 이 산들은 정말 험하거든.

방금 전화통화를 했어. 어제 ##명의 사상자가 있던 한 부대의 작전으로 우리는 200명을 죽였고, 대략 200명 이상의 사망자와 그만큼의 부상자가 나왔어. 이번 전투 이후 연대 전체를 세어 봤더니 중공군 776명이 죽었고, 약 6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000명이 다쳤어. 부상자들은 산 아래로 데려가는 건 끔찍한 일이야. 들것에 실어나르는 경우엔 4명이 함께 옮겨야 하고, 지프는 1~2마일 떨어져 있을 수 있어.

우리의 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몇몇 핵심 장교들은 5일간 일본에서 휴식과 요양을 할 예정이었어. 나는 그들이 휴가를 가지 못하게 했고, 그들 중 한 명은 매우 훌륭한 군인이었는데 작전 시작과 동시에 사망했지. 지휘관의 삶이란 이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 미국에서 있을 때와는 다른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도 있지.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끔찍한 결과들이 따라오기 때문에 모든 결정은 옳아야만 해.

우리는 한 지역(금성의 바로 남쪽)을 얻기 위해 6일째 전투를 벌이고 있어. 이곳은 지대가 높아서 전망이 좋아. 오늘 밤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어. 위대한 승리를 얻거나, 만약 중공군이 충분한 병력을 가지고 올 경우 재앙적인 패배를 맞을 수 있지. 다시 말해 우리는 그들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고 다들 내일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어. 만약 중공군이 오늘 밤 반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투에서 승리할 거고 그토록 오래 싸워온 지역을 얻게 될 거야.

이 지역은 우리 군의 후방으로 가는 수로와 다른 유리한 조건들이 있어 겨울에 유용할 거야. 우리는 이 지역을 차지해야 해. 아니면 후방의 좀 더 나은 지점으로 후퇴해야 해. 이 일이 일어나게 두지는 않을 거야. 우리가 마지막 공격을 날리기에 너무 늦지 않도록 오늘 계획과 준비는 다 이뤄졌고, 나는 방금 내일 공격 지시를 내렸어. 당신은 이번 일에 대해 신문에서 읽을 수 있을 거야.

말하지 않은 것들이 여전히 무척 많지만, 내일 밤을 위해 아껴둘게. 그래야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며 일주일 내내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런 긴장감은 잔인할 것 같아.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이번 작전에 대해 뉴스에서 새롭게 언급한 건 우리의 신문 등사판(mimeo paper)과 성조지(Starts and Stripes)의 기사가 전부야. 여기 동봉할게. 합동통신사 기자(United Press Correspondent)인 밥 깁슨이라는 사람이 "성명서"를 요청했어.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내가 연대장이니 뉴스 기사를 제공해야 한다며 계속 요구했어. 나는 그에게 군인들을 치하하고 더 나은 건강상태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글을 써주었지. 어떤 "인용"도 적당히 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어. 그러니 아마 당신은 녹스빌 뉴스 센티넬에서 "관련자(혹은 얼간이!) 입에서 직접 들은" 소식을 읽을 수도 있겠군.

당신이 새로운 집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니 정말 기뻐. 지금쯤 거의 정리가 끝나가고 있겠네. 그 노래는 멋진걸! 나도 한 곡 들어볼 수 있길 하늘에 빌어. 그것들은 음악을 만들려는 미국인들의 욕망을 진정으로 표현해주고 있어. 가짜 대중음악 작곡가들이 아니라고!

맥.




* 편지 중 잘 보이지 않은 부분은 ## 으로 처리했습니다.
* 번역: 박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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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퍼 장관의 첫 선물 ‘68년 전 편지’…“한미 함께한 희생의 상징”
    • 입력 2019-08-10 11:47:32
    • 수정2019-08-10 21:09:50
    취재K
마크 에스퍼 신임 미국 국방장관이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취임 뒤 첫 방한입니다. 에스퍼 장관은 어제(9일) 서울 국방부 청사를 찾아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한미국방장관회담을 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정세부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유지 여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상황까지 논의한 회담이 끝난 뒤, 조너선 래스 호프먼 미국 국방부 수석대변인 트위터에 짧은 영상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에스퍼 장관이 정경두 장관에게 선물을 건네는 장면입니다.

[링크  : https://twitter.com/ChiefPentSpox/status/1159699001354141697]
에스퍼 장관이 건넨 선물은 바로, 1951년 6·25 전쟁 중 한 미군 중위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호프먼 수석대변인은 트위터에 "우리가 함께한 역사와 희생을 기념하며, 에스퍼 국방장관이 정경두 장관에게 1951년 10월 21일 미 육군 중위가 전쟁 중에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선물합니다. 이 편지에는 한미동맹이 공유한 희생이 담겨 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에스퍼 장관은 이 편지를 건네면서 "한국 전우들과 어떻게 공통의 희생을 했는지 담겨있다"면서, "과거에 함께한 헌신과 희생이 지금도,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상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누구일까요? 데이브 이스트번 미 국방부 대변인은 "테네시 주 방위군 해리 맥키니(Harry McKinney) 대령이 한국전쟁 중에 쓴 편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맥키니 대령은 에스퍼 신임 장관과 마찬가지로,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고 한국 육군사관학교 설립 당시 선임고문관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미 국방부는 신임 국방장관과 연결고리가 있으면서, 또 한국과 인연이 깊은 맥키니 대령이 젊은 시절 쓴 편지를 선물로 택한 겁니다.

편지의 내용을 보면 1951년, 한국군과 미군이 강원도 화천군 금성으로 추정되는 지역 인근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일 당시의 참혹함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사방에서 지뢰와 대포, 박격포가 생명을 위협하던 전장에서, 동료도 여럿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수백 명이 죽고 다친 전쟁 속에서 맥키니 당시 중위가 지휘관으로서 느낀 두려움과 책임감이 편지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아래, 편지 첫장의 전문 번역을 함께 싣습니다.


1951년 10월 21일쯤 한국에서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가 늘 쓰는 방식 기억하지? 날짜를 기억할 수가 없네. 이상한 일이 아니야. 2주 동안 우리 연대는 이곳에서 16개월 동안 경험한 것 중 가장 어렵고 잔혹한 전투를 하고 있거든. 지금까지 22명의 장교와 600명의 군인이 숨지거나 부상했어. 그나마 부상자 중 2%만 사망한 건 다 의료팀 덕분이야. 부상자를 의료팀에 데려가거나 의료진이 부상자를 볼 수만 있다면 그는 살 기회가 있어.

장교 한 명은 3일 전 부대로 갔는데 오늘 부상을 입었어. 그는 2차 세계대전에서 4번이나 다쳤어. 이번이 다섯 번째라 상당히 두려움에 떨고 있어. 한 장교는 제18보병대의 소위였고 6개의 퍼플 하트 훈장과 2개의 실버 스타 훈장, 그리고 수훈 십자 훈장을 받았어. 그가 도착했을 때 나는 그의 훌륭한 공적을 고려해 좀 더 안전한 4.2 포대(Mortor Company)에 넣었지. 그는 트럭을 타고 가다가 지뢰를 밟고 또다시 다쳤어.

나는 대포와 박격포의 공격을 받았는데, 대포는 경고였지만 박격포는 그렇지 않았지... 더 끔찍해. 도로에서 지뢰가 제거된 뒤 8번이나 운전해서 지나갔는데 나중에 누군가는 지뢰를 밟았어. 이틀 전, 나는 같은 도로를 지나갔는데 함께 가던 4대의 지프 중 세 명의 경비들을 태우고 가던 선두의 지프가 지뢰를 밟아서 커다란 굉음과 함께 먼지를 일으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어. 그러나어 TNT의 2.5파운드 중 일부만 터져서 누구도 다치지 않았어. 이건 우리가 발견한 것 중 유일한 불발탄이었지.

도랑이나 참호에 몸을 숨기고 있는 동안 주변으로 20~30여 발의 대포와 박격포가 터질 때의 느낌은 결코 상상할 수 없을 거야. 그러나 익숙해지고 나면 더는 신경 쓰이지 않아. 매 순간 나와 함께 하는 것은 이 산을 올라야 한다는 끔찍한 두려움이야. 이 산들은 정말 험하거든.

방금 전화통화를 했어. 어제 ##명의 사상자가 있던 한 부대의 작전으로 우리는 200명을 죽였고, 대략 200명 이상의 사망자와 그만큼의 부상자가 나왔어. 이번 전투 이후 연대 전체를 세어 봤더니 중공군 776명이 죽었고, 약 6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000명이 다쳤어. 부상자들은 산 아래로 데려가는 건 끔찍한 일이야. 들것에 실어나르는 경우엔 4명이 함께 옮겨야 하고, 지프는 1~2마일 떨어져 있을 수 있어.

우리의 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몇몇 핵심 장교들은 5일간 일본에서 휴식과 요양을 할 예정이었어. 나는 그들이 휴가를 가지 못하게 했고, 그들 중 한 명은 매우 훌륭한 군인이었는데 작전 시작과 동시에 사망했지. 지휘관의 삶이란 이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 미국에서 있을 때와는 다른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도 있지.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끔찍한 결과들이 따라오기 때문에 모든 결정은 옳아야만 해.

우리는 한 지역(금성의 바로 남쪽)을 얻기 위해 6일째 전투를 벌이고 있어. 이곳은 지대가 높아서 전망이 좋아. 오늘 밤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어. 위대한 승리를 얻거나, 만약 중공군이 충분한 병력을 가지고 올 경우 재앙적인 패배를 맞을 수 있지. 다시 말해 우리는 그들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고 다들 내일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어. 만약 중공군이 오늘 밤 반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투에서 승리할 거고 그토록 오래 싸워온 지역을 얻게 될 거야.

이 지역은 우리 군의 후방으로 가는 수로와 다른 유리한 조건들이 있어 겨울에 유용할 거야. 우리는 이 지역을 차지해야 해. 아니면 후방의 좀 더 나은 지점으로 후퇴해야 해. 이 일이 일어나게 두지는 않을 거야. 우리가 마지막 공격을 날리기에 너무 늦지 않도록 오늘 계획과 준비는 다 이뤄졌고, 나는 방금 내일 공격 지시를 내렸어. 당신은 이번 일에 대해 신문에서 읽을 수 있을 거야.

말하지 않은 것들이 여전히 무척 많지만, 내일 밤을 위해 아껴둘게. 그래야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며 일주일 내내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런 긴장감은 잔인할 것 같아.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이번 작전에 대해 뉴스에서 새롭게 언급한 건 우리의 신문 등사판(mimeo paper)과 성조지(Starts and Stripes)의 기사가 전부야. 여기 동봉할게. 합동통신사 기자(United Press Correspondent)인 밥 깁슨이라는 사람이 "성명서"를 요청했어.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내가 연대장이니 뉴스 기사를 제공해야 한다며 계속 요구했어. 나는 그에게 군인들을 치하하고 더 나은 건강상태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글을 써주었지. 어떤 "인용"도 적당히 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어. 그러니 아마 당신은 녹스빌 뉴스 센티넬에서 "관련자(혹은 얼간이!) 입에서 직접 들은" 소식을 읽을 수도 있겠군.

당신이 새로운 집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니 정말 기뻐. 지금쯤 거의 정리가 끝나가고 있겠네. 그 노래는 멋진걸! 나도 한 곡 들어볼 수 있길 하늘에 빌어. 그것들은 음악을 만들려는 미국인들의 욕망을 진정으로 표현해주고 있어. 가짜 대중음악 작곡가들이 아니라고!

맥.




* 편지 중 잘 보이지 않은 부분은 ## 으로 처리했습니다.
* 번역: 박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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